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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용서하시라, 스무살 베트남 신부여

곽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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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기사를 두 번 읽을 수 없었다. 머리는 꼼꼼히 챙겨볼 것을 재촉했지만, 마음은 따르지 않았다. 두 눈은 먼 산에 박혀버렸다. 내용은 단순했 지만, 그 충격은 쉽게 정리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력한 이를 유린하는 차별과 배제, 공포와 협박, 억압과 폭력 등 괴물의 온갖 속성이 우글거렸다. 그건 바로 우리 자신의 숨겨온 속성이자, 나 자신의 맨얼굴이었다. 그 부끄러운 모습을 직시할 자신이 내겐 없었다.

 

112418182699_20050817.JPG 이젠 ‘T’(티)라는 영문 이니셜로 남은 스무살 베트남 신부, 아직 학생 신분인 나의 딸보다 4살 어린 나이였다. 세상을 무채색으로 보는 법이 없고, 무지개색으로 그리는 나이, 꿈·사랑·희망 따위의 말들에 귀기울이며, 그 눈은 바다 너머 아득한 미지의 땅을 응시하는 나이. 들꽃만 봐도 가슴이 설레고, 날아가는 새의 날개에 사연 하나씩 실어 보내는 나이, 그런 신부를 기만하고, 능욕하고, 폭력을 휘두르다, 그 가슴에 칼까지 꽂았다. 그건 미친 자만이 아니었다. 광기의 우리 속으로 던져지도록 방치한 우리 또한 공범이었다.

솔직히 부끄러움보다 앞서는 건 그 순간에 도 발동하는 욕심이었다. 그날도, 그 후에도 나는 별일 없이 지냈다. 적당히 안타까워하고, 적당히 슬픈 척하고, 적당히 분노하고, 적당히 나무라다가, 때가 되면 하루 세끼 거르지 않았고, 술 몇 잔에 시시덕거렸으며, 가끔은 은밀한 일탈을 꿈꾸기도 했다. 그런 이중성과 허위의식이 부끄러웠지만, 그것이 드러남으로써 밀폐된 나의 평화가 흔들리거나 깨지는 것이 더 싫었다.

 

그러나 이 땅의 누이들, 그 누이의 누이들, 그보다 더 먼 누이들이 겪었던 일들까지 외면하거나 잊을 순 없는 일. 스무살 신부 ‘티’가 당한 오늘의 현실은 바로 엊그제 우리 누이들이 당한 현실이었다. 불과 20여년 전, 윤금이씨는 기지촌의 한 쪽방에서 처참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가난은 윤씨를 기지촌으로 밀어넣었고, 윤씨는 그곳에서 이 땅을 탈출하기 위한 마지막 소망 곧 미국행을 꿈꾸었지만, 결국 그는 제국의 병사에 의해 몸과 영혼이 난자당한 채 이 세상을 떴다. 기지촌 여인으로서 더럽다 멸시를 받았지만, 그의 꿈마저 불결할 순 없었다. 그것은 멋도 모르고 47살의 중증 정신질환자에게 팔려온 티의 꿈과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 미스 킴, 미스 리는 동두천에서 부산에 이르기까지 텍사스촌마다 가득했으니, 그건 6·25전쟁이 이 땅에 조성한 막장이었다. 수많은 가난한 누이들은 군입 하나 덜고, 동생들 학교 보내기 위해 그곳에 몸을 던져야 했다. 그보다 앞선 세대의 누이들은 일제의 성노리개가 되어 전쟁터로 끌려다녔고, 그보다 더 앞선 누이들은 중국에 공녀로 바쳐졌다. 민간에선 심청이처럼 쌀 몇 석에 팔려가기 일쑤였다.

 

소설 <감자>의 복녀는 그런 팔려가는 조선인 신부의 전형이었다. 단돈 80원에 무능력자에게 팔려 시집간 복녀는 먹고살기 위해 작업장 간부에게 몸을 팔았고, 감자 서리를 하다가 걸려 지주인 왕 서방의 애첩 노릇을 했고, 버림받게 되자 다툼 끝에 낫에 찔려 죽는다.

 

<감자>의 결말은 이렇다. 복녀를 죽인 왕 서방과 복녀의 남편 그리고 한방의사는 복녀의 사인을 뇌일혈로 하기로 담합한다. 왕 서방은 사례비로 남편에게 30원, 의사에게 20원을 건넨다. 지금도 통하는 고전적 수법이다. 티의 죽음도 그렇게 정리될까. 내가 티의 부모나 형제라면, 아니 그 이웃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작은 비석 하나 우리 가슴에 세우자. 스무살 신부의 짓밟힌 사랑과 꿈을 기억하고, 그것을 유린한 우리의 광기와 폭력, 차별과 무관심을 함께 기억하는 작은 비석.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석보다야 쉽게 잊히겠지만, 그 흔적만으로도 우리 가슴속에 작은 별빛으로 빛날 것이니, 우리로 말미암아 고통받은 이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작은 연대의 표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겨례 : 2010-07-13 오후 08:44:25  [곽병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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