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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문 베트남 소득(1인당 GDP), 北의 10%(1986년)수준서 3배(2012년)로… 리더의 선택이 運命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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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의 선택

統一 이후 경기부양책 실패, 개방파·신중파 논쟁 끝에

시장경제 도입으로 결론… 지도층 기득권도 일부 포기


- 김일성의 선택

'사회주의 완전 승리' 목표, 개인農 대신 집단농장 운영

폐쇄적인 계획경제 고집해 90년대 극심한 경제난 불러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의 붕괴가 시작된 1986년 베트남의 1인당 GDP는 84달러(세계은행 기준)로 북한(805달러)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베트남 정부 관계자들은 "당시 우리는 정말로 밥도 못 먹고 살 지경이었다"며 "당시엔 베트남이 북한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적잖았다"고 했다.


하지만 도이머이 정책 도입 이후 두 나라의 운명은 뒤바뀌었다. 북한이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기록하는 동안 베트남은 연평균 7~8%대 고도성장을 거듭했다. 2003년엔 베트남의 1인당 GDP가 북한을 넘어섰다. 2012년 기준으로 베트남의 1인당 GDP는 1716달러로 북한(583달러)의 3배에 가까웠다. 한국은행이 추산한 북한 1인당 GDP(2013년 1252달러)를 기준으로 계산해도 베트남의 73% 수준에 그친다. 전문가들은 30년 전 두 나라 지도자의 엇갈린 판단과 결정이 국가의 운명을 갈랐다고 분석했다.



◇지도자의 선택이 나라 운명 갈라

베트남은 1986년 12월 제6차 당대회를 열어 베트남의 경제 수준을 사회주의 과도기 초기 단계로 진단했다. '진실을 바로 들여다보고 진실에 기초한 평가를 하며 진실을 말하자'는 취지에 입각한 평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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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과 북한의 1인당 GDP 변화 비교 그래프 


그러나 비슷한 시기 북한 김일성 주석은 북한의 발전 수준을 '사회주의 완전 승리 단계에 진입하는 시기'라며 정반대로 평가했다. 김일성은 1986년 12월 30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현 시기 당면한 투쟁 과업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는 것"이라며 "완전히 승리한 사회주의 사회는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과도기가 끝나고 공산주의의 낮은 단계가 완전히 실현된 사회"라고 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당시 북한은 3차 7개년 계획(1987~1993년)이라는 폐쇄적인 계획경제 방식을 고집했다"며 "1986년의 선택이 양국의 발전을 가르는 전환점이었다"고 했다. 김일성은 1987년 북한 경제 간부들에게 "(외화가 부족하지만) 국제통화기금에서 돈을 얻어 쓰는 것은 스스로 예속의 올가미를 쓰는 것과 같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며 대외 개방을 경계했다. 또 "농업을 발전시키려면 개인농 대신 사회주의식 대농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최근 일부 사회주의 국가가 수정주의, 개량주의의 길로 나가고 있다"며 베트남과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을 비난했다. 그러나 6년 뒤인 1993년 북한은 제3차 7개년 계획의 실패를 공식 시인했고, 1995년부터 극심한 경제난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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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국민의 개혁 요구를 지도자가 수용

 베트남 중앙경제연구소 보치 타잉 부소장은 "1975년 통일을 이룬 베트남은 경기 부양책을 시행했지만 실패했다"며 "1970년대 말까지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했다"고 했다. 경제 위기를 맞은 베트남은 중대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장경제를 공부한 유학파가 전무한 상태였기 때문에 체제 전환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했다. 이로 인해 당시 베트남 지도층은 양분(兩分)됐다. 보치 타잉 부소장은 "국가가 생산 시스템을 제어해야 한다는 신중파와 시장경제 시스템을 전면 도입해야 한다는 개방파가 충돌했다"며 "격렬한 논쟁 끝에 개방파의 의견이 채택됐고, 결국 그들이 옳았음이 증명됐다"고 했다.


베트남 지도층은 자신들의 기득권도 일정 부분 포기했다. 군부 지도층은 100만명 이상이었던 군인을 절반 수준으로 감축하기로 했다. 감축된 군 인력이 자연스럽게 시장으로 나와 경제 발전을 위한 노동력이 됐다. 보치 타잉 부소장은 "지도층이 국민적 개혁 요구를 받아들인 게 바로 도이머이 정책"이라고 했다.


반면 북한은 지도층이 변화와 개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제 발전을 바라는 주민의 요구보다는 체제 유지에 치중하면서 개혁·개방의 시기를 놓쳐버렸다.



조선닷컴 : 2015-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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