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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문 세계 2위 커피생산 대국 베트남이 올라 선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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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오 매일경제신문 기자가 전하는 '검은 와인' 커피 이야기. 농장에서부터 뉴욕·런던의 선물거래소를 지나 최종적으로 카페에 이르게 되는 커피 산업의 단면을 전한다. 사연을 읽는 당신도 커피 무역상이 된 '프랑스 시인 랭보' '조선 황제 고종' '혁명의 아이콘 체게바라' 못지않은 커피 마니아 길을 가게 될지도 모른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사랑처럼 달콤한' 커피 시장으로 떠나보자. 

[올 어바웃 커피-1]"제제야, 너도 나처럼 빵을 커피에 적셔서 먹어 봐. 하지만 삼킬 때 소리를 내면 안돼. 보기 흉하거든."('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중 뽀르뚜가 아저씨가 주인공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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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브라질에서 커피 콩을 기관차의 연로로 퍼담는 풍경/사진=게티이미지

 

우리가 지금 브라질을 여행 중이라고 상상해보자. 오늘 일정은 소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의 주인공 제제가 살았던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에서 남미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브라질 금융의 중심지인 상파울루(Sao Paulo)까지 기차를 타고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차가 좀 특이하다.석탄 대신 커피 콩을 태우며 '칙칙폭폭' 달리는 기관차를 상상할 수 있는가. 일단 기관차라니 20세기 초반의 흑백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다. 여기에 커피를 태운다고 하니 어쩐지 구수하면서 분위기 있는 향이 퍼지는 로스팅 카페에 있는 듯한 낭만감이 밀려온다. 

꿈에서나 가능할 것 같지만 1932년 브라질에선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같은 해 미국의 과학기술 전문지 '파퓰러사이언스(Popular Science)'는 12월호에 이렇게 적었다. "요즘 브라질에선 커피콩을 바짝 눌러서 연탄으로 만든다. 커피 연탄은 공장과 기관차가 돌아갈 수 있도록 열을 내는 연료로 쓴다. 브라질에선 최근 몇 년간 풍년이 들어서 커피가 여기저기 넘쳐난다. 커피콩을 연료로 쓰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기 전에는 커피 수십만 자루가 고스란히 바다에 버려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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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파퓰러사이언스지 12월호/사진=구글



20세기 극단의 시대(The Age of Extremes)를 커피 시장도 겪었지만 특히 브라질은 그 한복판에 있었다. 브라질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커피를 생산하는 나라다. 풍년이란 게 좋은 소식 같지만 골치 아픈 일이 생기기도 한다. 하필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브라질에 '커피 대풍년'이 든 시기는 '경제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이 시작된 1929년이었다. 커피나무를 심으면 5년 정도 후에 첫 열매가 열린다는 것은 브라질 농부들도 알고 있었지만 5년 후의 세계 경제 흐름을 예측하는 건 힘들다. 

1773년 보스턴 차 사건 이후 본격적으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미국은 20세기 커피 주 수입국이었다. 미국은 가까운 브라질에서 커피 콩을 샀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이 일어나기 직전인 1913년에는 650만포대를 사들이다가 금주법 시행(1919년)을 즈음해 커피 붐이 일면서 1923년에는 1100만포대를 브라질로부터 수입했다. 수요가 많으면 공급도 느는 시장의 법칙에 따라 브라질에는 커피 농장이 더 많아졌고 커피 나무가 척척 심어졌다. 하지만 브라질을 중심으로 한 커피 시장은 경제 대공황에 이은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과 한국전쟁(1950~1953년)을 겪는 동안 침체기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전쟁 후에 이어진 1950년대 세계 경기 호황 속에 커피 수요가 늘었지만 이에 따라 커피 공급이 더 크게 늘면서 세계 커피 생산의 주축을 이루는 남미·중남미(남미) 대륙의 경제도 회색빛이 돌았다. 

 1960년대는 미국과 소련의 편 가르기 경쟁이 한창이던 냉전의 시대(Cold War)였다. 1959년 쿠바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진영에서는 남미 국가들이 공산주의 진영으로 돌아서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커피 값을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1962년에는 유엔 뉴욕본부에서 국제커피조약(International Coffee Agreement·ICA)이 체결됐다. 커피콩을 수출하는 회원국마다 공급을 일정량으로 할당(Quota)함으로써 공급량을 통제하는 대신 수입하는 회원국들이 시장 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커피를 사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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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미나스 제라이스(Minas Gerais) 주의 한 농장에서 직원이 수확한 커피 체리를 바구니에 옮겨담고 있다. 남동부 지역에 속한 미나스 제라이스 주는 브라질 커피 생산의 50%가량을 차지하는 최대 커피 산지이다./사진=블룸버그Bloomberg

 

협력은 언제나 배신으로 깨진다. 그 균열에선 항상 '다크호스'가 등장한다. 1976~1977년 닥친 자연재해로 커피 생산 1·2위인 브라질과 콜롬비아의 공급이 급감하자 세계 커피 가격은 가파르게 올랐다. 더 많이 생산해도 이득이 되는 상황에서 남미 대륙 국가 간의 생산 할당량이 유명무실해진 가운데 아시아 대륙에선 미국과의 전쟁(1960~1975년)에서 이긴 베트남이 '경제 쇄신'을 꿈꾸고 있었다. 

21세기 즈음 커피 콩 생산의 순위가 뒤바뀌면서 베트남이 브라질의 뒤를 좇게 됐다. 국제커피협회(International Coffee Organization·ICO)에 따르면 1999년 베트남의 생산량은 1163만1000포대(포대당 60㎏)로 이전까지 줄곧 2위를 달리던 콜롬비아(967만9000포대)를 앞질러버렸다. 1990년 당시만 해도 베트남(131만포대)은 세계 생산량(9310만2000 포대)의 0.1% 정도를 생산했을 뿐이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베트남의 커피콩 생산량은 매년 20~30%씩 늘었다. 베트남 공산당 정부가 1986년 발표한 도이머이(Doi Moi) 노선에 따라 커피 농업을 장려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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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커피 농장 풍경/사진=BBC

 

순위는 굳어졌다. 지난해인 2016년 말 부동의 1위인 브라질은 5500만포대, 2위인 베트남은 2550만포대, 3위인 콜롬비아는 1450만포대를 생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무역정책을 총괄하는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은 이전에 '브라질에 비가 내리면 스타벅스 주식을 사라'는 책을 냈다. 가뭄일 때 비가 내려 생산량이 늘면 커피콩의 가격이 떨어지지만 브라질로부터 값싼 커피콩을 대거 사들이는 스타벅스의 이윤과 주가는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제 주식 시장에선 새삼 베트남 날씨에 관심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스타벅스가 베트남에서 낮은 가격에 대량 생산된 커피콩을 사게 된다면 말이다. 

 

매일경제 : 2017-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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