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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문 ‘박항서의 기적’ 왜 한국에선 발휘하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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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AFC U-23 챔피언십]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박항서호'의 신드롬


비록 우승 문턱에서 아쉽게 돌아서야 했지만 베트남은 이번 대회의 진정한 승자였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23세 이하(U-23) 축구 대표팀은 '2018 아시아 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이라는 자국 역대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8강과 4강전에서 연달아 승부차기를 치렀던 베트남은 우즈베키스탄과의 결승전에서도 3연속 연장 승부를 치르는 혈전 끝에 종료 직전 결승골을 내주며 1-2로 석패했다. 하지만 약체라는 예상을 깨고 대회 내내 보여준 베트남의 끈질긴 투혼과 조직력은 박수를 받기 충분했다. 특히 부임 3개월 만에 팀을 역동적으로 만든 한국인 박항서 감독의 지도력에 대한 찬사도 쏟아졌다. 


박항서 감독은 지난해 10월 베트남 축구대표팀의 사령탑에 올랐다. 성인 대표팀과 U-23 대표팀까지 겸임하는 자리였다. 부임 초기 베트남 현지에서도 박 감독의 경력이나 지도력에 대한 냉담한 반응이 적지않았으나 불과 3개월 만에 베트남 축구의 영웅으로 위상이 반전됐다. 대회 기간내내 베트남 현지는 축구 열기로 뒤덮였고,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국가주석으로부터 축전을 받는 등 일약 '베트남의 히딩크'로 불릴 만큼 국민적 관심을 받는 지도자가 됐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대표팀을 맡기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도 그리 인지도가 높은 지도자는 아니었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대표팀의 코치로서 처음 팬들에게 주목을 받았지만 이후로는 주로 K리그의 지방 중소클럽의 감독직을 거치며 중위권 전문 감독 정도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독특한 이름 때문에 '바캉스' 감독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말 그대로 K리그 축구팬들이나 아는 정도의 인지도였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 대표팀 신임 감독이 지난 11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의 베트남 축구협회에서 정식 감독계약 체결식을 가진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 감독은 이날 회견에서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동남아시아 정상, 아시아 정상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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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베트남 축구 대표팀 신임 감독이 지난해 10월 11일(현지 시각) 베트남 하노이의 베트남 축구협회에서 정식 감독계약 체결식을 가진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처음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박항서가 만든 신드롬


박 감독이 지난해 베트남의 지휘봉을 잡을 때만 해도 국내에서도 크게 주목하는 이들은 없었다. 박감독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베트남 축구 대표팀을 동남아시아를 넘어 아시아 정상으로 이끌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 대회의 베트남은 '황금 세대'로 불릴만큼 자국에서 많은 기대를 모았던 선수들이지만 체력과 근성이 부족한 것이 약점이었다. 박 감독은 지휘봉을 잡자마자 기존 베트남 축구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여기에 한국축구 특유의 강력한 압박과 지구력을 덧입히며 짧은 시간에 팀 전력을 향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베트남은 이번 대회를 통해 오는 8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강한 자신감을 얻었다. 젊은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베트남은 23세 이하 선수들이 이번 대회를 통하여 경험과 조직력을 축적했다. 이 선수들의 대부분이 내년 1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열리는 아시안컵 본선에도 출전할 것이 유력하다. 연령대별 대표팀과 성인팀을 아우르고 있는 박항서 감독으로서는 장기적인 플랜을 가지고 베트남 축구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셈이다.


한편으로 한국 축구에겐 박항서 신드롬을 보면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순간이었다. 박항서 감독과 베트남 축구의 동화같은 성공스토리는 한국 축구에도 많은 숙제를 남겼다. 박 감독의 성공과 대조적으로 김봉길 감독이 이끌었던 한국 축구 대표팀은 4강에 올랐음에도 대회 내내 저조한 경기력과 무색무취한 축구로 팬들에게 큰 실망감을 남겼다. 분위기는 정반대였지만 이번 대회에서 베트남과 한국이 공통적으로 체감한 교훈은 '지도자 한 명의 역량과 비전에 따라 팀이 어떻게 달라질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는 점이다.


박 감독은 16년 전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23세 이하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바 있다. 당시 대표팀은 한일 월드컵의 후광으로 국민적 기대치가 매우 높은 상황이었고 박항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히딩크호의 코치였다는 이름값과 연속성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대표팀은 준결승에서 승부차기로 패하며 기대했던 금메달에 실패했고 박항서 감독은  많은 비판을 받으며 지휘봉을 내려놓아야 했다. 이후 박 감독은 더 이상 대표팀에서 기회를 얻지 못했다.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첫 번째 홀로서기는 실패로 끝난 모양새가 됐지만 이후 박 감독은 꾸준히 현장에서 경험을 쌓으며 더 좋은 지도자로 성장했다. 하지만 K리그에서 그가 맡았던 팀들은 대부분 재정이 약한 시도민구단이거나 전력이 떨어지는 약체팀들이었기에 박 감독의 역량을 모두 확인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만일 베트남의 지휘봉을 잡는 기회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박 감독은 그저 K리그의 중하위권팀을 전전하던 평범한 감독으로 잊혔을 것이다. 


해외 시장에서 더 인정 받는 한국의 인재들


사실 박감독 이전에도 한국인 감독들이 해외무대에서 지도력을 인정받은 경우는 종종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해외에서 인정받은 지도자들이 정작 국내 무대에서는 기대만큼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경우도 꽤 많았다는 점이다. 중국축구계에서 원조 '한류'열풍의 주역이었던 이장수 전 창춘 야타이 감독, 2017 일본 J리그 2관왕을 차지한 윤정환 세레소 오사카 감독, '홍콩의 히딩크'로 불리우는 김판곤 국가대표 감독 선임위원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장수 감독은 K리그 FC 서울, 윤정환 감독은 울산 현대의 지휘봉을 잡은 일이 있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고 팬들과의 관계도 썩 좋지 못했다. 김판곤 감독은 아예 K리그에서는 코치 경험만 있을뿐 1군 감독 경험이 전무하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해외무대에서 눈부신 성공을 일궈내며 '한국 축구의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해외무대에서 성공한 한국인 지도자들은 대부분 현지의 문화와 정서에 잘 녹아들면서 지도스타일 역시 '현지화'에 성공했다는 것이 비결로 꼽힌다. 한국축구 특유의 코칭스타일이나 축구철학이 일반적인 국내 무대와 달리, 해외무대에서는 오히려 신선하고 차별화된 리더십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도 중요한 차이다. 선수만이 아니라 지도자 역시 해외무대에 도전하는 것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는 이유다.


또한 이번 대회가 보여준 교훈은 아시아 축구의 평준화다. 연령대별 대표팀은 곧 3~4년뒤 성인축구의 판도를 가늠할수 있는 복선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축구는 최근 연령대별 대표팀에서 잇달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성인축구도 이제 월드컵 본선행을 낙관하기 어려운 처지다. 


베트남은 박항서 같은 외국인 감독에게 과감하게 문호를 개방하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우승팀 우즈벡은 이번 대회에서 한국, 일본 같은 아시아 전통강호들을 실력으로 제압하며 기세를 떨쳤다. 이에 비해 한국은 급변하는 아시아 축구 판도에 대한 위기의식 없이 준비 과정부터 지나치게 안일하게 접근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능력이나 경력면에서 검증되지 않은 인물들의 낙하산-회전문 인사, 연속성 없는 대표팀 운영, 한국 축구만의 고유한 스타일과 철학의 부재. 이는 점점 격차가 좁혀지는 아시아 축구 경쟁에서 한국이 점점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항서나 윤정환 같이 충분히 능력있는 인재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왜 모국에서 일하지 못하고 해외 무대로 떠날 수밖에 없었을까. 한국 축구의 인재 활용 시스템에 대해 다시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오마이뉴스 : 2018-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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