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신문 성완종 발목 잡은 '랜드마크72' 현장 가보니…백화점 자리 텅 비고 오피스는 40% 공실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가면 어디서 고개를 들어도 눈에 띄는 거대한 건물이 하나 보인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어 했던 곳, ‘랜드마크72’이다. 하노이 뿐 아니라 베트남 전체를 통틀어 가장 높은 건물인 랜드마크72를 15일 찾았다.
랜드마크72는 오피스빌딩 한 동과 아파트 두 동으로 구성된 주상복합 타운으로, 하노이 신시가지 인근 신흥 부호촌에 자리하고 있다. 서울로 치면 강남 옆 잠실 정도 위치이다. 이 가운데 우뚝 솟은 오피스빌딩이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높이 346m, 지상 72층으로 서울 여의도 63빌딩(250m)보다 100m 가까이 높다. 건물 연면적은 63빌딩의 3.5배에 이른다. 2007년 착공해 2011년 완공됐다. 총 사업비만 10억5000만달러(약 1조2000억원)가 투입된 대형 사업이었다.
대기오염이 심한 베트남 하노이 시내 건너편에서 바라 본 랜드마크72의 전경. 다른 건물과 비교해 월등한 높이를 자랑한다. /박유연 기자
베트남 정부는 경남기업이 추진한 랜드마크72에 큰 관심을 갖고 총력 지원했다. 호치민에 자국 기업이 짓고 있던 초고층 빌딩의 층고를 제한해서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랜드마크72’라는 상징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이런 지원 속에서 경남기업은 중간에 워크아웃을 겪는 우여곡절을 거쳐 가며 2011년 랜드마크72를 완공했다. 현지인들 사이에선 랜드마크72 공식 명칭보다는 ‘갱남’이란 별칭이 더 익숙하다. 경남기업이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기업명을 적극 홍보한 결과이다.
밖에서 바라본 전경은 고층건물이 드문 하노이 특성상 확실히 눈에 띄고, 건물을 오가는 입주 업체 임직원들로 활기가 넘쳐 보인다. 서울 을지로나 강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피스 빌딩을 연상시킨다. 입구에 비치된 디스플레이 화면에 원하는 층수를 누르면 엘리베이터가 자동 배정되는 등 편의 시설에 신경을 쓴 흔적도 보인다.
그러나 감춰진 속살은 외양과 다르다. 우선 오피스동 하층부가 통째로 비어 있다. 원래 현지 브랜드인 팍슨백화점이 유치돼 운영되고 있었는데, 장사가 안돼 작년 말 백화점 측이 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입주업체 관계자는 “4개월 넘게 백화점 자리가 비어 있다”며 “하노이 중심부가 아닌 지역에서 백화점을 운영했으니 성공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밑에서 올려다본 랜드마크72. 왼쪽이 오피스동. 오른쪽이 아파트이다. /박유연 기자
사무실도 빈 곳이 많다. 건물 곳곳을 다녀 보니 간판이 없는 빈 사무실이 다수 눈에 띄었다. 현지 업체에 따르면 완공 후 4년이 지났는데도 공실률이 40%에 이른다고 한다. 사무공간 10곳 중 4곳이 비어 있는 것이다. 그나마 입주업체 대부분은 한국 기업들이다. GS, 대림산업, 기업은행, 우리은행 등 입주업체의 3분의 2 가까이가 한국 기업들이다. 한국 기업들이 이곳으로 옮기지 않았다면 랜드마크72의 공실률은 더 높았을 것이다. 입주업체 관계자는 “하노이 지역 사무실 수요 예측이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큰 건물을 짓다 보니 공실이 많다”며 “모두 채우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몇 년 째 지연되고 있는 호텔 유치이다. 당초 경남기업은 랜드마크72를 서비스레지던스(청소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콘도형 숙소), 오피스, 백화점, 호텔 등이 있는 복합시설로 만들려고 했지만 이 가운데 핵심인 호텔이 아직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인터콘티넨탈호텔이 들어오기로 돼 있지만 호텔 측이 원하는 수준의 내부 공사를 마무리하지 못해 호텔 입주가 지연되고 있다. 경남기업은 채권단 자금 지원을 받아 공사를 마무리하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랜드마크72 오피스동의 입구 모습. /박유연 기자
그나마 사무동 옆에 자리한 두 동의 아파트는 분양이 완료된 상태이다. 아파트는 30평형에서 70평형까지 중대형으로 구성돼 있는데 30평형 가격은 우리 돈 3억원을 약간 밑돌고 40평형은 4억원을 밑도는 수준이다. 이 저정도 가격이면 최상류층은 아니지만 베트남에선 신흥 부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 구매자의 대부분은 하노이 중상층들이다. 사무실 임대료는 30평형 기준 한 달 400만원 수준이다. 임대료가 높은 편이라 공실률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건물 유지는 되고 있다고 한다.
랜드마크72에 투숙하고 싶은 사람은 서비스레지던스를 이용하면 된다. 하지만 콘도형 숙소의 특성상 내부 시설이나 편의성 측면에서 호텔과 경쟁이 안돼, 장기 출장을 나온 사람들이 장기 투숙용으로 이용하거나 가족 단위 관광객들의 숙소 정도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베트남을 방문하는 국내 고위급 인사들은 인근 호텔로 가지 랜드마크72를 이용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현지 관계자들은 말한다.
입주업체들은 랜드마크 72에 대해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고층을 안정적으로 받치려면 공사비가 많이 든다. 특히 하노이는 땅이 물러서 공법상 더 많은 돈이 들어갔다고 한다. 경남기업은 기초 공사에 많은 돈을 들였고, 그 과정에서 내부 인테리어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실제 안에 들어가 보면 건물 로비부터 사무 공간에 이르기까지 새로 지은 건물이란 느낌을 주지 못하고 단촐하다는 인상을 준다. 입주업체 관계자는 “지은 지 30년 가까이 된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보다 내부 상태가 안좋은 것 같다”고 했다.
현지 교민 등에 따르면 랜드마크72의 내부 인테리어와 분양 상담 등은 성완종 전 회장의 부인이 완공 시점을 즈음해 이곳에 상주하다시피하며 진두지휘했다고 한다. 경비 절감에 주안점을 두면서 직원들을 다그쳐 가며 마무리를 하다 보니 고급스런 마감이 되지 못했다는 게 현지 교민들의 설명이다.
이 빌딩은 성 전 회장의 숙원사업이었지만, 결국 성 전 회장의 발목을 잡았다. 3.3㎡당 1000만원대의 비싼 분양가에다 베트남 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자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 결과 경남기업은 2013년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자금난이 계속되면서 최근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성 전 회장은 한때 이 빌딩 매각도 시도했으나 총투자비에 턱없이 못미치는 7000억~8000억원대의 가격을 제시해 포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닷컴 : 201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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