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신문 베트남 여성 누엔티의 ‘불법’ 체류기…한국은 잔인했다
본격적인 장마가 찾아오기 전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7월 어느날 한 무리의 사내들이 한 식당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주방에서 일을 돕고 있던 한 여성을 둘러싸고 "같이 가야겠다"며 손을 잡아 끌었다.
그녀는 체념한 듯 식당 사장에게 "엄마, 저 베트남 가요"라는 말을 남기고 사내들과 함께 승합차를 타고 사라졌다. 사내의 정체는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 신고를 받은 이들은 기간과 특정 지역을 정해 한번에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를 잡는다.
가난이 죄인을 만드는 것일까. 베트남 여성 누엔티(가명, 23세)의 한국 체류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누엔티는 베트남에서 어머니와 오빠, 언니 2명과 함께 살았다. 누엔티가 7살 때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생활은 더욱 힘들어졌다.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다. 누엔티는 돈을 벌어야 했다. 너무 어린 나이(15살)탓에 취직이 안돼 언니의 이름과 나이로 속이고 가구공장에 들어가서 '시다일'을 했다. 3년 동안 가구공장에서 일한 뒤 옷감을 집으로 가져와 재봉하는 일을 했다.
누엔티는 가난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특히 아픈 어머니를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하는 방법이 있었다. 한국으로 가면 가족에게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생활비를 보낼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만난 사람은 35살 직장을 다니는 한국 남성이었다. 전처 사이에서 낳은 15살 딸 아이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베트남에서 딱 한번 그 남자를 만났다. 그리고 2013년 8월 그는 한국에 들어왔다.
결혼절차는 까다로웠다. 합법적으로 한국에서 체류할 수 있는 요건인 혼인 관계를 증명하는 일은 간단치 않았다. 관할지역 베트남 지방 법원에 '혼인장'을 접수하고 40여개에 이르는 질문에 응답하는 인터뷰를 통과해야 한다. 만난 과정, 배우자 가족관계, 최소한의 의사 소통 등을 묻고 답변하면 인터뷰 담당관이 판단해 통과 여부를 결정한다. 그리고 기본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 영사관발급 혼인성립요건 증명서, 배우자 여권사본 공증, 주민증사본 등 여러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주한 베트남 대사관을 방문해 혼인요건인증서를 신청하고 발급받은 뒤 국제결혼 혼인신고를 하고 비자를 발급받게 된다.
체류기간에 따라 비자는 1년, 2년, 3년짜리가 있지만 1년 이상의 결혼비자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누엔티는 어느 무엇보다 소중한 '결혼비자'를 받아안고 꿈에 부푼채 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고통의 시작이었다. 누엔티를 기다린 건 충청도 한 시골의 밭일이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하고 딸 아이의 등교 준비까지 해야 했다. 그리고 밭일을 나갔다. 점심 때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밥상을 차렸다. 오후엔 새참까지 준비했다. 오후 6시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저녁을 차렸다. 남편은 외지에서 출퇴근을 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시골집으로 왔다.
일도 고됐지만 시어머니가 때리는 일이 잦아지면서 괴로웠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쉴 때 전화 통화를 하지 못하게 하고 외출도 금지 당했다. 언어 소통이 되지 않으면서 시어머니가 답답해했고 시아버지가 외출을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핸드백 가방을 휘둘러 누엔티를 때렸다. 시어머니는 누엔티에게 자주 "시커멓고 뚱뚱하다"는 말로 구박했다.
누엔티는 한국 생활 중 시골 밭일을 끔찍히 싫어했다. 가족과 연락도 하지 못하고 사실상 감금 당한 채 일만 하는 생활이 계속되면서다. 누엔티는 시골집을 나가고 싶었다. 베트남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누엔티는 시골집을 나와 센터(외국인 노동자 쉼터)에서 생활하고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일을 반복했다.
누엔티는 남편에게 이혼 의사를 밝혔고, 남편도 이에 동의했다. 그리고 누엔티는 남편이 건네준 이혼서류에 서명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폭력 등 이혼 귀책사유가 배우자에게 있는 상태로 인정을 받으면 한국 체류 자격을 얻을 수 있고 비자 연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폭력을 당하고도 이를 입증하지 못해 협의 이혼을 하게 되고 비자 연장 자격을 잃어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게 된다.
이혼을 하고 비자가 만료가 될 시기에 누엔티는 베트남으로 돌아갈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쉼터에선 만난 사람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이대로 베트남으로 가면 엄마가 슬퍼하실거야. 돈 벌어서 고향으로 가"
가난 때문에 한국 사람과 결혼했고 가족에게 생활비라도 보내려고 했지만 할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베트남으로 돌아가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었지만 가족을 위해 돈을 벌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누엔티는 불법체류자가 됐다.
누엔티는 쉼터를 나와 인천으로 향했다. 남동공단에 있는 미싱공장에 취직했다. 어렸을 때부터 재봉틀을 다뤘던 누엔티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공단 근처 교회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처음으로 한국에서 돈을 벌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번 돈도 쉽게 받아내지 못했다. 두달을 일했지만 한달치 월급밖에 받지 못하고 공장문을 나왔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자신의 정당한 노동댓가를 요구하기란 어려웠다.
그리고 누엔티가 택한 곳이 삼겹살 집이었다. 돈을 내지 않고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누엔티는 음식을 남기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누엔티는 "엄마(식당 사장) 음식 남기면 안되요. 배고플 때 생각해서 먹어둬야 해요"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식당일이 즐거웠다. 시골 밭일과 공장일을 비교해도 식당일은 쉬웠다. 손님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할 때 가끔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식당일을 하면서 부쩍 한국말이 늘었다. 식당일에도 요령이 생겼다. 외국인 쉼터에서 알게된 친구의 명의로 대포 통장을 만들었고 이 통장을 통해 베트남에 돈을 보냈다.
누엔티는 손님이 짓궂은 요구를 해도 참았다. 한번은 베트남에서 왔다고 하니 손님이 "베트남 노래 한번 해보라"고 했다. 식당 사장은 놀라서 "손님, 우리 며느리에요"라고 누엔티를 감쌌고, 손님은 그제서야 무안한 듯 음식을 재빨리 먹고 식당을 나갔다.
"착하고 성실하고 어른 공경할 줄 알고 누엔티처럼 똑똑한 사람 못 봤어. 버릴데가 없는 사람이야"
누엔티를 지켜본 식당 사장의 말이다.
식당 사장은 누엔티가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식당 사장의 눈에 누엔티는 한국 남성과 결혼해 집을 사려고 착실하게 일하는 막내딸 같은 아이였다.
식당 시장은 지난 6월 식당에서 필요한 보건증을 떼기 위해 누엔티에게 외국인 등록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날 갑자기 누엔티는 식당을 나오지 않았다. 누엔티는 외국인 등록증이 없는 불법 체류자라는 사실이 밝혀질까봐 두려웠다. 식당일을 오래하고 싶었다. 그녀는 식당 사장에게 남편이 외국인 등록증을 주지 않아 싸워서 오늘은 식당에 나갈 수 없다고 둘러댔다.
다행히도 다음날 식당에선 불법체류자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누군가의 신고를 받고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식당에 들이닥치기 전까진.
누엔티는 외국인 노동자가 자신을 신고했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외국인 쉼터에 따르면 외국인들끼리 갈등이 생겨 서로 신고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누엔티도 외국인 동료와 싸우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갇히는 몸이 됐다.
누엔티가 잡혀간 곳은 출입국관리사무소 임시 보호소였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서류를 심사해 비자가 만료되는 등 불법체류자로 최종 심사가 확정되면 강제출국 조치를 내린다.
누엔티는 차라리 속이 편했다. 2년 동안의 짧은 한국 생활을 청산하고 빨리 베트남으로 돌아가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면회실 통유리 너머로 누엔티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20대 나이의 해맑은 웃음을 오랜만에 지어보였다.
하지만 끝까지 한국은 누엔티의 발목을 잡았다. 자신이 불법체류자가 된 것은 이혼 때문이었는데 자신이 이혼했다는 것을 베트남에 입증하는 일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었다.
자신의 이혼을 베트남에 입증하기 위해선 협의이혼조서와 혼인관계증명서가 필요했다. 두가지 문서를 베트남 언어로 번역해 변호사 공증까지 받고 외교통상부에 제출해 영사 인증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해당 문서를 주한 베트남 대사관에 제출한 다음 인증을 받고 누엔티가 살았던 관할 베트남 지방 법원에도 영사 인증 받은 문서를 제출해야지만 ‘이혼한 사람’이라는 것이 인정된다.
하지만 누엔티는 임시보호소에 갇혀 있어 이를 처리해줄 사람이 없다. 임시보호소는 질병에 걸리거나 채무관계에 놓여 있는 등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강제출국 전까지 임시보호 조치를 해제시켜주지 않았다.
또한 협의이혼조서는 당사자가 아니면 누군가 위임을 받아 대리로 전달 받아야 하고 혼인관계증명서를 떼는 과정도 이혼한 남편의 본적지 주소와 주민등록번호까지 적게 돼 있어 까다롭다.
문제는 이 같은 서류를 처리하지 못하고 강제출국을 당하게 되면 베트남에서 재혼을 하고 싶어도 서류상으로는 기혼자로 돼 있다는 점이다. 베트남으로 돌아간 뒤 한국으로 돌아와 서류를 처리하고 싶어도 강제출국 뒤엔 최대 5년 동안 한국으로 돌아올 수 없어 서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심지어 협의이혼조서 보존기간은 최대 2년이어서 2년 안에 서류를 정리하지 못하면 베트남에서 자신이 이혼했다는 것을 입증하기란 더욱 어려워진다. 베트남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도 법적인 결혼 관계를 맺지 못하고 동거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자본주의는 남의 불행을 쨉싸게 알아차리고 '블루오션'의 돈벌이를 만들어냈다.
누엔티처럼 이혼을 하고 불법체류자가 된 뒤 잡힌 사람을 상대로 이혼 관련 서류 처리를 대행해주는 업체가 생겼다. 이들은 서류 처리가 급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기간에 따라 '급행대행서비스'를 하고 서류 처리 비용을 올려받는다. 누엔티처럼 갇혀 있어 서류 처리를 위임할 사람을 찾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이 같은 대행업체의 유혹은 크지만 수십만원의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혹여 서류 처리 과정 중 강제출국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면 돈만 물어야 한다.
주한 베트남 대사관이 자국민을 상대로 '인지세 장사'를 하고 있다는 얘기도 베트남 사람들 사이에선 많이 알려진 내용이다. 이혼 관련 서류 등 일체의 서류 처리 영사 인증비용을 올려 한장당 수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누엔티에게도 출국 명령이 떨어졌다. 이혼 관련 서류를 해결하기도 전에 누엔티는 베트남으로 떠났다. 출입국관리소 면회실 너머로 누엔티는 "이제 엄마랑 다시는 헤어지지 않고 살거에요"라는 말했다.
원옥금 베트남 공동체 대표는 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누엔티의 사례는 배우자 쪽에 이혼 귀책사유가 있는 건데 소송으로 입증을 하고 이혼했으면 비자를 계속 연장할 수 있었겠지만 법적 절차를 몰라 부당하게 강제 출국을 당한 것이다. 이혼 서류 처리 문제도 출입국관리소가 구제 장치를 두고 비자 연장을 해서 심사할 수 있도록 하고 서류 처리를 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이 같은 문제를 전혀 모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주민 센터를 포함해 시민사회단체에서는 누엔티와 같은 사례처럼 불법체류자의 이혼 관련 서류 처리의 어려움 등 제도적 문제를 깊이 알지 못하고 있었다.
원 대표는 "배우자의 폭행을 입증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주 여성의 휴대폰을 뺏고 사진과 녹음을 하지 못하도록 증거를 은폐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진단서를 떼더라도 입증까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원 대표는 "다문화 가정에 이혼이 많은 이유는 서로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주 여성들은 돈을 벌기 원하지만 남편은 원하지 않고 나이 차이도 많이난다. 언어와 문화 차이를 점점 많이 느끼게 되면서 서로 갈라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판결 주요 내용은 타인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되고 취업 자격이 없는 외국인이어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은 이주노동자의 퇴직금을 출국 뒤 14일 안에 받도록 한 조항, 농업 축산업 등 정해진 직종의 전환이 금지돼 있는 조항 등을 독소조항으로 꼽고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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