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신문 [특파원 칼럼] 같은 처지가 된 한국과 베트남
남중국해 중재 판결이 나온 이튿날인 지난 13일 중국 관영 <차이나 데일리> 1면엔 ‘중국의 입장’이란 제목의 세계지도가 실렸다. “남중국해 분쟁은 중재가 아닌 협상을 통해 해결돼야 한다는 중국의 입장에 70개국 이상이 공개적으로 지지를 표명했다”는 설명이 붙었다. 지도엔 중국을 지지하는 나라들이 붉은색으로 색칠됐다. 중국을 비롯해 러시아, 몽골, 카자흐스탄, 인도 등 큰 나라들이 붉은색으로 물드니 아시아는 한껏 중국에 기운 듯 보였다. 아프리카도 줄잡아 절반 이상이 붉은색이었다.
중국 관영 <차이나 데일리>의 지난 13일치 1면에 실린 ‘중국의 입장’이란 제목의 세계지도.
파란색으로 칠한 필리핀 지지국은 미국, 일본,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베트남뿐이었다. 설명은 “주로 미국 및 미국과 가까운 동맹국 몇 나라만이 필리핀을 지지하면서 중재 판결이 법적으로 효력이 있다고 한다”고 했다. 나머지 나라들은 ‘중립’이거나 ‘보도 시점까지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는 뜻의 회색으로 분류됐다. 한국도 회색이었다.
중국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민 이 지도를 보면서, 중국이 세계 각국에 대해 매기고 있는 또 하나의 점수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진핑 주석 집권 뒤 미-중 관계는 차치하더라도, 전 세계 수많은 제3국은 고뇌의 순간이 있었다. 지난해 9월 열병식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그리고 남중국해 문제 등 3가지가 대표적이다. 각각 중국을 기쁘게 해서 감사를 받거나, 서운하게 만들어 아쉬움을 산 결정들이었다.
가장 중국을 기쁘게 한, 다시 말해서 열병식에 국가원수를 보냈고, 투자은행에도 가입했으며, 남중국해 문제에서도 중국 편을 들어준 나라는 라오스, 러시아, 몽골, 우즈베키스탄, 이집트, 카자흐스탄, 캄보디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파키스탄 등 10개국이다. 열병식에 하원의장이 참석했던 폴란드도 ‘지도자 참석국’으로 분류되니 11개국이라 할 수도 있다. 향후 중국 외교에서 ‘귀한 몸’이 될 것 같은 나라들이다.
셋 중 둘에서만 중국 손을 들어준 나라는 19개국이다. 그중에서도 말레이시아, 베네수엘라, 아랍에미리트연합, 이란, 콩고민주공화국 등 14개국은 남중국해 문제에서 중국 편을 들면서, 열병식 또는 투자은행 가운데 1곳만 참가했다. 인도는 판결 당일 외교부가 ‘판결 존중’ 입장을 밝혔음에도, 중국은 자기편으로 분류했다.
한국을 포함해 남아프리카공화국, 미얀마, 타이 등 4개국은 열병식과 투자은행으로 중국을 흐뭇하게 해주고는, 남중국해 문제에서 주저했던 나라로 자리매김됐다.
그러나 한국의 위치가 다른 3개국과 같지는 않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회원국인 미얀마와 타이는 각각 남중국해 영유권과 무관하므로 아세안 결정을 따르겠다는 입장이지만, 미얀마는 중국의 전통적 ‘우방’이고, 타이는 최근 중국 잠수함 구입 결정을 발표해 미국을 불편케 했다. 남아공은 판결 직후 “주권국들이 역사적 사실과 국제법에 의한 직접 협상을 통해 해결하는 것을 지지한다”며 ‘브릭스 프렌드’ 중국을 사실상 지지했다.
단순하지만, 한국과 비슷한 나라를 굳이 찾자면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국가주석이 열병식에 참석했고 투자은행에도 가입했지만, 남중국해에선 중국과 영유권 다툼 중이다. 남중국해 문제에선 비교적 자유로운 한국은, 사실 그동안 미국이 강조하는 ‘항행의 자유’와 중국이 강조하는 ‘당사국 간 결정’을 동시에 이야기하며 꽤 괜찮은 외교전을 펼쳤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또는 의도적으로) 비슷한 시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국 배치로 중국의 강한 불만을 사면서, 그동안 남중국해와 관련한 외교적 노력을 다 까먹었다. 그동안 들인 공력이 아깝고, 그래도 좋다는 배짱이 안타깝다.
한겨레 : 201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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