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신문 베트남은 하이트진로의 새 기회의 땅 될까
하이트진로가 베트남 하노이 현지에 연 '진로소주클럽'에서 케이팝 관련 공연이 진행되는 모습. / 사진=하이트진로
인구 9500만명의 베트남은 하이트진로의 새 기회의 땅이 될까? 6%에 달하는 연평균 경제성장률과 28세에 불과한 평균연령은 새로운 주류 수출영토로서의 가능성을 크게 높이고 있다. 한류에 우호적인 현지정서도 점유율을 높이는데 호재가 될 전망이다. 하이트진로 측은 소주를 현지공략의 마스터키로 삼은 모양새다.
지난달 29일부터 방문한 베트남 하노이 시내는 활기가 넘쳤다. 공항부터 이어진 고속도로 역시 깔끔하게 정비돼 있었다. 현지 대형마트는 마치 국내 복합쇼핑몰을 떠올리게 했다. 그만큼 소비여력이 좋아졌다는 얘기다.
김인규 하이트진로 대표이사는 29일 베트남 하노이 현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 경제성장, 인구기반, 주류시장 현황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인도차이나 벨트 내 제1 집중 공략 국가로 베트남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하이트진로는 지난 3월 현지법인 설립을 완료했다.
베트남 인구는 9500만명에 이른다. 세계 14위 규모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도 경제적‧정치적 중심국가 노릇을 하고 있다. 교민은 12만명으로 추정된다. 1인당 GDP는 2100달러 수준이다.
김 대표는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베트남은 하이트진로와 깊은 인연이 있다. 1968년 첫 제품을 수출한 나라”라며 “뒤늦게 법인을 갖게 돼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다. 베트남은 GDP 기준 세계 7위 수준의 거대하고 큰 시장”이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하이트진로의 해외사업을 총괄하는 황정호 상무 역시 “베트남은 높은 경제 성장률에 더해 아시아 지역 물류 요충지로서 인도차이나 벨트 시장 공략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전략국가”라고 밝혔다.
베트남은 하노이, 호치민, 다낭 등 주요도시에 모든 경제가 집중돼 있다. 도시 GDP 규모가 유독 높은 셈이다. 하노이 시내 신도심의 경우 마치 분당신도시의 초창기를 떠올리게 했다. 고층건물 공사현장도 곳곳에 있었다. 국내 대기업 로고가 선명하게 박힌 광고판도 눈길을 끌었다. 오토바이가 교통수단의 중심이었지만, 이따금씩 외제차량도 눈에 띄었다. 베트남 현지 가이드는 “베트남 내에서도 소득격차가 커지고 있다”며 “부유층의 소비규모는 대단하다. 수천만원 짜리 차량도 구매한다”고 전했다.
베트남의 2010년 이후 연평균 경제 성장률은 6%를 넘어섰다. 같은 기간 글로벌 경제는 금융위기로 인해 저성장 국면에 빠졌다. 성장률이 더 돋보일 수 밖에 없는 까닭이다. 실제 베트남의 경제성장률은 글로벌 평균보다 2배 이상 높다. 최근 들어서는 외국 자본 유치에도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하이트진로 측은 2020년까지 베트남 현지 내 브랜드 인지도를 7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또 한국소주시장 내 점유율도 80% 수준으로 높이고 현재 1%인 증류주 시장 내 점유율은 7%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 현재 베트남 증류주 시장은 900만 상자(360Lx30본) 규모다.
황정호 상무는 “한때 현지 1위 주류인 보드카하노이가 90% 가까운 점유율 기록했지만 지금은 55%대까지 떨어져 있기 때문에 2위 브랜드 경쟁을 해볼 여건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최근 하이트진로는 자몽에이슬도 팔기 시작했다.
하노이 시내 최대 대형마트인 이온마트에 비치된 주류코너. 하이트진로의 인터내셔널 브랜드인 '진로24'와 참이슬 등이 눈길을 끈다. / 사진=고재석 기자
현지 타깃 제품도 맥주보다는 소주로 쏠려있는 모양새다. 황 상무는 “현지 영업이익을 보면 소주는 두 자리 수이지만 맥주는 좋지 않다”고 밝혔다. 현지법인 관계자도 “맥주의 경우 원래 900원에 팔아야 하는데 할인해서 600원으로 맞췄다”며 “시장공략을 위한 출혈”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베트남 현지에 들어어와있는 버드와이저와 하이네켄, 삿포로 등은 OEM생산 방식을 활용하고 있어 가격경쟁력이 강하다.
반면 소주의 현지공략 가능성은 훨씬 높은 편이다. 베트남은 고도주 원샷(one shot) 문화가 형성돼 있어 참이슬 등 한국소주가 시장에 진입하기 용이하다. 베트남의 증류주 시장도 최근 5년간 17% 이상 성장했다. 전체 주류 시장의 6.5% 대비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하이트진로 판매율 역시 지난 5년간 연평균 약 25% 이상 지속적으로 늘었다.
베트남 젊은 층의 주류 소비가 늘고 있다는 점도 호재다. 베트남 평균연령은 28세에 불과하다. 이들은 한국 상품과 문화에 익숙하고 소주에 대한 인지도도 비교적 높다. 젊은 세대가 가진 한류에 대한 우호정서는 하이트진로 입장에서는 대형호재다. 실제 기자가 방문한 하이트진로 베트남 팝업스토어에서는 매장에 울려퍼지는 케이팝(K-POP)을 따라 부르며 한국식으로 술잔을 기울이는 현지고객들이 많았다. 현지 최고 인기가수도 국내 아이돌 걸그룹의 노래로 공연했다.
김인규 대표는 현지 주요 타겟층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우선 문화 흡수에 유연하고 흡입력도 강한 20대 중‧후반 세대가 마케팅의 주 타켓층”이라며 “중‧장년층은 보수적 성향이 강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후 순위 타깃으로 두고 공략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친화적인 환경은 현지공략에 득이 될 가능성이 높다. 황정호 상무는 “세계적으로 볼 때 성장세가 높은 지역은 유럽과 아프리카지만 아직 판매 규모가 너무 작다. 하지만 아시아는 평균 11.1% 성장 중”이라며 “특히 한류가 강하다는 점이 도움이 많이 된다. 베트남 역시 한류가 강하고 현지 최대 투자국 역시 한국”이라고 전했다. 현재 베트남에는 5000여개 한국 기업이 진출해있다. 투자 규모는 50조원에 이른다.
베트남 현지 이온마트에 입점해있는 국내 브랜드의 모습. / 사진=고재석 기자
다만 법인 설립 초창기라 아직 소주 인지도는 높지 않다. 베트남 현지에서는 교민과 주재원 대상 판매가 중심인 모양새다. 향후 하이트진로 측은 고도주에 익숙한 베트남 현지인을 위해 알코올 도수 19.9%의 베트남 전용 ‘참이슬 클래식’을 새롭게 선보일 계획이다.
알코올 도수 19.9%는 국내에는 생소한 술이다. 베트남 현지의 도수 문화와도 맞지 않다. 수수께끼는 현지 주세 체계를 살펴보면 풀린다. 하노이 시내 대형마트에서 만난 현지법인 허영주 차장은 “베트남에서 알코올 도수 20% 이상은 주세 60%가 붙는다. 그 미만은 30%다. 특히 관세도 55%가 붙은 채 시작하니 가격 출발점 자체가 다른 셈”이라며 “그래서 19.9%를 만들었는데 이 역시 현지 식약처 등록에만 6개월 이상 걸렸다”고 설명했다.
실제 아직까지 국내 소주는 현지에서 가격경쟁력이 약한 편이다. 하노이 현지 최대 대형마트 중 하나인 이온마트(AEON MART)에서눈 참이슬(360ml)과 자몽에이슬(360ml)의 가격이 한국 돈 약 2700원 수준이었다. 인터내셔널 브랜드인 진로24(JINRO24, 750ml)는 한 병에 약 6000원 정도다. 진로24는 가격경쟁력이 약해 현지에서 프리미엄 제품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습이다. 반면 현지 1위 주류인 보드카 하노이는 300mL가 약 1900원, 700ml 제품이 약 35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하이트진로 측은 고도주 판매가 증가하기 시작하는 9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장공략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베트남은 여름에 맥주 소비량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날씨가 선선해질수록 보드카 소비량이 절반 가까이 증가한다.
19.9%의 알코올 도수는 베트남 현지에서 약한 술에 속한다. 하노이 시내 마트 곳곳에 비치돼있던 현지 1위 주류 ‘보드카 하노이’는 알코올 도수 29%를 넘나든다. 맥주도 평균 알코올 도수가 5%다. 국내 맥주는 4.3%~4.5% 수준이다. 허영주 차장은 “한국도 20년 전 소주 도수가 29%였다. 베트남 현지 경제규모가 그 정도 수준”이라며 “다만 화이트칼라는 낮은 도수를 좋아한다. 특히 한국 드라마 때문에 한국 소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자연스레 변할 사회문화적 분위기에 기대를 걸어보겠다는 얘기다.
한류가 이 기대감을 키워준다. 실제 기자가 직접 현지에서 TV를 켜니 국내 드라마를 쉽게 시청할 수 있었다. 현지 마트에서도 국내 식품 대기업의 제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앞선 관계자는 “밤 8~9시 메인드라마에서 한국작품이 많이 나온다. 특히 가족과 친구, 연인끼리 소주를 마시는 모습이 나오기 때문에 이에 대한 로망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온마트에서 만난 응옹빅(23세‧여) 씨는 “소주의 알코올 도수가 베트남 보드카보다 낮아 가족들과 함께 마시기에도 부담이 없어 자주 즐기는 편”이라며 “한국 드라마를 보면 포장마차에서 소주 마시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데, 가족들과TV를 보다가 이 장면이 나오면 저절로 소주를 찾게 된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하이트진로 역시 한국형 음주문화를 강조하는 마케팅 전략을 펼치려는 모양새다. 하이트진로는 팝업스토어 ‘하이트진로 소주클럽’을 지난달 27일 하노이 쭉바익에 열었다. 이 곳은 젊은층과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으로 베트남판 홍대로 불린다. 팝업스토어는 오는 11월 둘째 주까지 운영된다.
기자가 방문한 30일 팝업스토에서는 각종 문화행사와 현지 최고 인기가수의 공연이 연이어 열렸다. 특히 현지 댄스그룹이 국내 아이돌그룹의 곡에 맞춰 공연을 펼치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현지인들에게 케이팝은 익숙한 문화였다.
하이트진로 측은 아예 현지 프랜차이즈 사업에도 진출하기로 했다. 팝업 스토어 진행 노하우와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식 프랜차이즈 식당 가칭 ‘진로포차’를 열어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갈 계획이다. 2017년 1호점 오픈 후 프랜차이즈 사업을 본격화해 2020년에는 10개로 확대, 지속적인 브랜드 홍보와 판매 기반을 확보한다는 복안이다.
현지 팝업스토어에서 술을 마시던 햐오(22세‧남) 씨는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포장마차와 비슷한 곳이라 여기 오게 됐다”고 밝혔다.
베트남 하노이 현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김인규 하이트진로 대표이사가 발언하고 있다. / 사진=하이트진로
한류 마케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오는 10월부터 현지에서 방영되는 한국-베트남 공동제작 드라마 ‘오늘도 청춘2’에는 진로24와 참이슬이 간접광고로 노출된다. 이 드라마는 한국배우 강태오와 베트남 인기 여배우가 주연으로 나선다. 베트남 국영방송국 VTV에서 방영된다. 앞서 ‘오늘도 청춘’ 시즌 1은 지난해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연말시상식을 휩쓸었다. 특히 베트남 광고법상 알코올 15도 이상의 주류는 TV광고가 엄격하게 제한돼 있어 간접광고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모양새다.
관건은 현지 유통망 개척이다. 현재 소주는 빅씨마트, 이온마트 등 현지 대형마트와 편의점 일부에 입점해있다. 아직은 가격경쟁력이 약해 현지 일반 슈퍼까지는 진출하지 못한 상태다. 베트남 현지 주류시장 판매량의 75% 가량은 식당에서 나온다. 하이트진로 측은 현지에서 인기를 끄는 한국형 프랜차이즈 가게를 중심으로 유통망 개척에 나섰다. 하노이 시내에만 현지인이 운영하는 한식당이 10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사회주의라는 정치적 환경과 베트남 전쟁의 기억 역시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하이트진로 측은 이 역시 큰 영향을 끼치지 않으리라 보고 있다. 하노이 현지법인 관계자는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투입된 건 중부지역이다. 실제 이 때문에 중부지역 진출은 쉽지 않다. 하지만 하노이는 한국군이 들어온 적도 없고 전쟁을 겪지도 않았다”고 전했다.
황정호 상무 역시 “베트남의 경우 1988년도부터 2015년까지 줄기차게 대한민국이 투자 1위인 국가다. 반대로 얘기하면 30년 가까이 국가에서 투자에 대한 부분을 보호해주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대로를 봤듯이 국가가 기간 인프라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정치 역시 호치민의 유훈에 따라 이어오고 있다. 아직까지 투자 리스크에 대한 고민은 아주 크게 하고 있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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