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신문 친중으로 기우는 베트남…현지 한국기업들 “사드 불똥 튀면 어쩌나”
불확실성 커진 베트남 시장
미국 주도 TPP 무산 땐 중국과 '밀월'
한 쪽 고르기보다 실리 택할 수도
한국 기업, 장기적 전략 마련할 때
중국의 베트남 통한 압박 우려
저임금에 기댄 단순제조업 한계
자국기업 우선주의도 악재 요인
호찌민에서 차로 40여 분 거리에 있는 시몬느 베트남 롱안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지갑과 가방을 만들고 있다. 이 공장에서만 근로자 5900여명이 매달 지갑 35만개, 가방 30만개를 생산해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
올해 베트남과 관련한 최대 이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다. 오는 20일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선거 공약대로 TPP를 폐기하면 베트남의 무역정책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베트남 현지 전문가들은 베트남이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가입하는 등 베트남과 중국의 관계가 더 깊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응우옌쑤언푹 총리를 비롯해 베트남 고위 관료 상당수가 친(親)중 성향이다. 중국이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문제 삼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깊어지는 두 나라의 밀월은 한국 기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베트남의 강대국 ‘줄타기’
현재로선 TPP의 운명을 단언하기 힘들다. 트럼프 당선자는 TPP에 대해 선거 과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TPP를 수정할 방안이 없다. 미국은 개별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FTA)이 필요하지 더 이상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같은 다자 간 협약은 맺지 않을 것이다.” 이에 근거하면 크게 두 가지 시나리오를 예측할 수 있다.
즉각 폐기 후 베트남에 대한 무역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이 첫 번째다. 베트남의 대(對)미 무역 흑자액이 2009년 75억달러에서 지난해 약 300억달러에 달하는 등 매년 급증하는 터라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정부로선 베트남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미국과 베트남 간 FTA 협상으로 국면이 전환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재진 베트남 한얼컨설팅 대표는 “미국의 타깃은 중국”이라며 “트럼프 정부는 중국을 대체할 전략적 수입 대상국이 필요하고 베트남만 한 곳이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럼에도 전문가 대부분이 미국과 베트남 간 친밀도가 버락 오바마 정부 때보다는 떨어질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베트남이 그간의 친미 일변도에서 벗어나 친중 정책을 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베트남 현지 은행인 밀리터리뱅크 관계자는 “베트남이 TPP에 가입한 2015년은 중국과의 영토 분쟁이 절정에 달했던 때”라며 “당시 친미 성향의 응우옌떤중 전 총리는 미국을 활용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베트남 정부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KOTRA 호찌민무역관 관계자는 “어느 한쪽을 택하기보단 미·중 양쪽에서 이익을 얻는 실리 외교를 펼칠 것”으로 전망했다. 베트남 현지에서도 중국이 주도하는 RCEP 가입과 미·베트남 FTA 협상이 동시에 진행될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무역협정을 통한 수출 시장 확보는 1986년 ‘도이모이’로 불리는 개혁·개방 정책을 택한 이래 베트남 정부의 일관된 정책이다. 2003년 아세안을 시작으로 일본 칠레 한국 유럽연합(EU) 등과 FTA를 맺었다. TPP는 개방 정책의 화룡점정으로, 발효만 된다면 베트남은 세계 시장의 절반 이상(59.2%, 국내총생산 기준)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게 된다.
◆고민 깊어진 베트남 진출 기업
베트남의 국내외 환경이 급변하면서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베트남 무역업을 하는 중소기업 관계자는 “불확실성이 가장 큰 문제”라며 “베트남 경제가 과거처럼 고속성장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2015년 6.68%에 달하던 베트남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6.21%로 떨어졌다. 외국 자본 유입도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월평균 외자 등록액이 16억8000만달러에 달했으나 TPP 발효 논란이 불거진 10월과 11월엔 각각 11억8000만달러, 4억9000만달러로 감소했다. 중국과 베트남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사드 한반도 배치 결정으로 인한 중국의 한국 기업 압박 기류가 베트남으로까지 번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일각에선 TPP 발효 무산을 실(失)로만 결론 내리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계영 화승비나 대표는 “기존에 베트남 시장에 진출한 기업들은 TPP가 발효되면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되고, 이것이 평균임금을 급격히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TPP 효과를 보고 신규 투자에 나선 기업들은 피해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이 대표의 진단이다.
전문가들은 베트남 경제구조의 변화에 발맞춘 장기적인 진출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저임금에 기댄 단순 제조업만으로는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얘기다. 호찌민에 지점을 둔 국내 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12.4% 등 매년 두 자릿수 상승률로 임금이 오르면서 이를 견디지 못하는 기업이 나오고 있다”며 “베트남의 한국계 은행 사이에선 부실 대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정부가 글로벌 밸류체인(가치사슬)에서 자국 기업 위상을 높이기 위해 산업구조 개편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한국 기업에는 악재다. 2007년 호찌민에 사무소를 개설한 스틱인베스트먼트 관계자는 “베트남 정부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가 베트남에 진출한 글로벌 대기업의 1, 2차 부품협력업체를 자국 기업으로 대체하는 것”이라며 “이미 삼성 등 국내 대기업에 베트남 협력업체 육성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내수 시장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시장 변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2년 800만명이던 중산층은 2030년 9500만명에 달해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할 것이란 예상이다. 내수 시장 규모도 같은 기간 460억달러에서 9400억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한국경제 : 2017-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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