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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문 [매경포럼] 베트남의 실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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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우옌쑤언푹 베트남 총리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을 찾았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동남아시아 국가 수반 중 백악관을 방문한 것은 푹 총리가 처음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나온 뉴스는 수조 원대의 물품 구매 계약이었다. 베트남은 미국으로부터 항공기 엔진 공급을 포함해 80억달러(약 9조원)어치를 사주기로 했다. 푹 총리가 대형 선물 보따리를 들고 트럼프 대통령을 찾아간 데는 대미 수출과 관련이 있다. 

트럼프는 베트남을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는 국가 중 하나로 지목한 터. 미국은 베트남과 무역에서 320억달러(약 35조원) 적자를 보고 있어 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푹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력을 받자 이를 완화할 묘안으로 대규모 구매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불과 40여 년 전 총부리를 겨누는 전쟁을 벌였고 인체에 치명적인 고엽제를 살포해 수백만 명이 고통을 받았지만 더 이상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해에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방문에 맞춰 국가 새 지도부 출범을 3개월이나 앞당기는 등 미국과의 우호적인 관계 형성에 공을 들여왔다. 베트남은 지난해 오바마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의 베트남에 대한 살상무기 수출금지 조치를 해제받는 성과를 얻어냈다. 

이런 행보는 베트남이 얼마나 실용적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과거나 형식에 얽매이기보다 현재의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베트남 실용주의는 경제정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3월 발표한 내국인 카지노 출입 허용 법안이 대표적이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은 도박을 만취, 성매매, 과도한 채무와 함께 사회악으로 규정해 금지해왔다. 그러던 베트남 정부가 내국인 도박 합법화를 선언하게 된 데는 현실을 인정하고 실리를 챙기자는 판단에서다. 베트남에서는 축구 경기, 투계 등 도박이 음성적으로 만연해왔고 일부 국민은 마카오 싱가포르 등지로 원정 도박까지 가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에 정부는 내국인 도박 양성화를 통해 국부 유출을 막고 외국 카지노기업 투자 유치 등을 통해 궁극적으로 추가적인 세수를 확보한다는 실익을 내세워 카지노에 대한 빗장을 푼 것이다. 

외국인 투자를 위한 각종 규제를 대폭 해제한 것도 베트남의 실용주의 정신에서 비롯됐다. 베트남 정부는 금융과 국영기업 등 일부를 제외한 사업 분야에서 외국인에게 지분의 100%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외국인 투자기업을 대하는 총리의 자세도 파격적이다. 최근 하노이 정부청사에서 열린 한·베트남 25주년 기념 인터뷰 자리에서 만난 푹 총리는 한국 중소기업들이 베트남에서 사업을 할 경우 자신이 직접 내각과 지방 관리를 대동하고 찾아가 기업의 애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을 정도다. 

베트남의 실용주의는 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지벗비엔 응번비엔(以不變 應萬變·이불변 응만변).` `내 안에 있는 하나의 불변으로 만변하는 세계에 대응한다`는 뜻의 베트남 말이다. 베트남의 국민 영웅 호찌민 전 주석이 1946년 중국과 미국을 상대로 싸우기 위해 과거 점령국이었던 프랑스와 협정을 맺으면서 사용했다. 호 전 주석은 이를 계기로 한때 반민족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독립을 위해서는 옛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실용주의 정신을 보여줬다. 

베트남은 작은 농업국가로 중국과 프랑스의 식민지배와 미국의 분단정책에 맞서 자주독립과 민족통일을 이룩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여러 강대국과의 투쟁에서 승리해 독립과 민족통일을 이루어낸 것은 호 전 주석의 실용주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베트남의 민족성 때문으로 볼 수 있을 게다. 사회주의 국가지만 1986년 이후 중국식 개혁·개방 노선을 도입하는 등 실용주의를 내세워 경제 발전을 이뤄내고 있다. 

인건비 상승과 사드 배치 문제 등으로 경쟁력이 약화된 한국 기업들이 중국을 대신할 대체 지역으로 베트남을 찾고 있지만 위안부 문제나 사드 배치 논란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한국이 진짜 주목해야 할 것은 베트남의 실용주의 정신이 아닐까. 일자리 창출이 최대 화두지만 오픈 카지노 승인 여부를 놓고 수년째 논란을 벌이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국은 베트남에 경제 성장이라는 성공 모델을 수출하고 있지만 이제는 베트남의 실용주의 정신을 수입해야 할 것 같다. 

 

MK : 2017-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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